끄적끄적

삶에 있어서도 자신 만의 속도가 필요하다.

Aaron's papa 2022. 3. 2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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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재미있는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30일 5분 달리기」 라는 책이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3492454

 

30일 5분 달리기 - YES24

누구나 할 수 있는, 해 본 적 없는 ‘5분의 기적’ - 30일 5분 달리기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었다. 무릎이 약한 사람은 달리면 안 된다고. 늘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힘들게 뛰어야 운동이 된다고.

www.yes24.com

사실 많은 기대를 하고 읽은 책은 아니고, 달리기를 취미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싶어서 읽게 된 책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책은 올해 제가 읽은 책 중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베스트 3위 안에 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냥 꾸준히 달리면 달리기가 재미있어집니다 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인데,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뭐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다고나 할까..

 

제가 달리기를 시작한 지는 1년 6개월 정도 됩니다. 밤에 걷기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뛰고 싶어 졌습니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오늘은 뛰어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요. 그리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죠. 저는 어릴 때 소아 천식을 앓았어서 심폐 지구력이 무척 약합니다. 그리고 30년 넘게 뛰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백 미터도 못 가서 헉헉 대며 멈춰 섰습니다. 아직도 그 첫날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죽을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기억납니다. 그렇게 숨 가쁘게 백 미터를 달려서 멈춰 선 후 쿵쾅 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와.. 내 체력 실화임?'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달리기, 한 번 제대로 해 봐야 겠다' 라는 생각이요. 그 첫날 이후 매일매일 달리기를 시도했고 백 미터, 이백 미터, 삼백미터.. 조금씩 더 멀리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1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렸던 건 2주 정도 달리고 나서야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뿌듯했죠. 쉬지 않고 노력하니 조금씩 뛸 수 있는 거리가 길어졌고 하루하루 발전해 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 건 그 후로도 꽤나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만, 처음으로 5킬로미터를 달리고 났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느낌이었죠.

두 달 정도 걸렸네요. 첫 5킬로미터 달성

그렇게 시작된 달리기가 이제는 1년 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달리기는 저의 삶이 되었습니다 라는 아름다운 결말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진 않았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무릎이 아파서 뛰지 못하던 날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운동을 해도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기는 나의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뛰지 않기도 했습니다. 특히 건강검진은 꽤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운동을 하기 전과 지금이 전혀 좋아진 게 없었기 때문에 실망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습관적으로 달리기는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그냥 습관적으로 마치 숙제처럼, 안 하면 의지가 없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억지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에는 정말 좋은 내용이 많습니다만, 제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느낀 부분은 바로 아래 문장이었습니다.

 

조금 덧붙여 설명을 드리면, 코로만 호흡하여도 편한 속도, 코로만 호흡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속도로 달리는 걸 연습하는 겁니다.
- 68페이지

 

제가 알고 있던 달리기와는 다른 달리기였습니다. 저도 숨이 찰 때까지 달려야 운동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코로만 호흡해도 괜찮은 속도로 달린다니? 이제 운동이 되는 건가? 달리기가 맞는 건가?

가장 최근 저의 달리기 시 심박수 데이터 입니다.

위에 심박수 데이터가 보이시나요? 20여분 정도 뛰었는데 거의 심장이 터질 정도로 뛰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지만 최소한 3킬로미터는 뛰자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뛰었죠. 세상에 심박수가 160 이라니? 억지로 억지로 뛰었다고 봐야 할 정도의 데이터입니다. 사실 저의 달리기 심박수는 대부분이 저런 데이터 입니다. 그래서 달리기가 너무 힘들었고, 처음에 느꼈던 재미는 어느새 많이 사라지고 없었죠. 기록에 집착하고 거리에 집착하면서 달리기가 더 이상 재밌는 운동이 아닌, 뭔가 해야 하는 숙제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코로만 숨을 쉬어도 괜찮은 속도로 달리는 게 오래 달릴 수 있고 즐겁게 달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책을 덮고 뛰러 나갔습니다. 천천히 정말 코로만 숨을 쉬어도 괜찮은 속도로. 

천천히 달렸을 때의 그래프

20분은 걸었고 20분만 뛰었으니 위 데이터를 보면 뛰는 동안에는 유산소 운동만 한 것으로 측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전혀 힘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똑같이 20분을 뛰었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편안했고 숨도 차지 않았고 심지어 처음 달리기를 할 때처럼 재미있었습니다. 숨이 차거나 힘들지 않으니 그만 뛸까 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주변 풍경도 더 살펴보면서 뛰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속도를 보니 킬로미터당 7분 30초가 나왔습니다. 보통 5분 후반대, 6분 초반대로 뛰었었는데, 사실 그건 저랑 맞지 않는 속도였던 거죠.

그런데 저는 왜 5분 후반대, 6분 초반대의 속도로 달리려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남들도 다 그 정도 속도로 뛰었기 때문입니다.

 

달리기를 마친 후 저는 한동안 멍한 상태였습니다. 뭐랄까, 너무 이상했죠. 나는 왜 이렇게 나랑 맞지도 않는 속도로 1년 6개월을 뛰었을까? 그렇게 나랑 맞지 않는 속도로 뛰었으니 매일 아침에 달리기를 해도 하루 종일 피곤하고 힘들었던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와이프가 항상 입버릇처럼 이야기했거든요. 몸이 좋아지려고 아침마다 뛰는데 왜 맨날 병든 닭처럼 그렇게 힘들어하냐고. 어쩌면 제가 저에게 맞는 속도로 모르고 그저 남들에게 맞추면서 무리해와서 그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제 삶의 속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나? 남들이 뛰고 있는 속도로 뛰기 위해서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사실 이런 것들을 깨닫는다고 해서 당장 내일부터 제 삶이 뭔가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진 않을 겁니다. 내일도 저는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비슷한 삶을 살겠죠. 하지만 중간중간 지금 나의 속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겁니다. 지금까지는 하지 않았던 나의 속도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이제 내일부터는 조금씩 하게 될 거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저의 속도를 찾아서 어제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 나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나의 속도를 찾은 후 다시 재미를 느끼게 된 달리기처럼요.

 

그냥 평범한 달리기 책 한 권 읽고 뭔가 대단한 걸 느낀 것 같아 쑥스럽습니다만, 저에게는 이 책이 꽤 큰 자극과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었습니다. 특히 속도라는 것에 대해서요. 

 

여러분도 자신만의 속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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