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글쓰기를 머뭇거리는 그대에게

Aaron's papa 2021. 12. 27. 22:01
반응형

저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저의 엔지니어로서의 삶의 궤도를 바꿨을 정도로 아주 큰 사건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동료나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간단한 블로그 라도 꼭 시작하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글쓰기를 주저하곤 합니다. 왜 안 쓰는지를 물어보면 귀찮아서.. 시간이 없어서.. 쓸 거리가 없어서 등등 다양한 이유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제가 제일 안타까워하는 건 쓰고 싶은 생각과 열정은 있지만 쓸 거리가 없어서 쓰지 못하는 경우와 쑥스러워서 쓰지 못하는 경우, 이 두 가지입니다. 귀찮아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못쓰는 건 도와줄 방법이 없지만 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면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글 쓰기를 시작하지 못하시는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봤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

먼저 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제가 처음 글을 쓴 게 2015년 7월 7일입니다.

브런치에 작성한 첫번째 글 (https://brunch.co.kr/@alden/2)

keepalive와 timewait의 상관관계라는 손발이 오그라 드는 제목의 글입니다. 아주 짧은 글입니다. 몇 줄 되지도 않고 내용 자체도 깊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글 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첫 번째 글을 무척 좋아합니다. 이 글이 있었기에 제가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고 생각 하 때문입니다.

문득 저 글을 쓴 날이 생각납니다. 저 글을 쓰고 발행 버튼을 클릭하고서는 혼자 집에서 얼굴이 벌게져 있었습니다. 무척 쑥스러웠거든요. 그리고 막 심장도 두근두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어색해했으면서 왜 저는 글을 쓰려고 했을까요? 그때 당시 저는 지식을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무척 강했습니다. 누군가와 나의 지식을 나눈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걸 잘 정리해 둬야겠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회사 위키에 정리해 놓으면 퇴사와 함께 날아가니까 퇴사 후에도 필요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외부에 정리해 둬야겠다. 이게 사실 글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지식을 자랑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글에 달린 응원의 댓글들 덕분에 힘을 얻었고 며칠 후 두 번째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글은 글 썼다고 페이스북에도 올렸었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글이 하나씩 하나씩 시간과 함께 쌓여가며 브런치에는 61개의 글이 티스토리에는 33개의 글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와..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세봤는데 정말 많이 쓰긴 했네요 ㅎㅎ


어떤 주제의 글을 써야 할까?

이제 저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가끔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떤 주제의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아무거나요~"

네 맞습니다. 아무거나. 아무거나 주세요 할 때 쓰는 그 아무거나 맞습니다. 블로그를 쓸 때 아주 멋진 주제를 잡아야 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어려운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블로그들도 있겠죠. 지식의 깊이가 상당하고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그런 멋진 글들이 가득한 블로그들,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주제라도 그 글에는 글쓴이의 생각과 시간과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비록 주제는 가벼울지언정 글 자체를 가볍게 볼 만한 글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가 저의 첫 글을 위에서 언급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뭐 저런 걸 글로 쓰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도 아니고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니까요. 블로그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어떤 주제를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안 쓰는 것보다는 가벼운 주제라도 글을 쓰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고민하지 말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글을 시작하면 그 뒤로는 조금씩 조금씩 더 편해집니다.


쑥스러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대다수의 한국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자신을 뽐내지 않으려고, 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도 무척이나 한국(?)적인 사람이라 처음 글을 쓰는 게 쑥스러워서 어려웠습니다. 마치 별것도 아닌 지식을 가지고 뽐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저보다 훨씬 뛰어난 엔지니어분들이 많은데 제가 뭐라고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글을 쓰는 것과 겸손은 전혀 다른 이야기거든요. 오히려 글을 쓴 사람에게 뭐 잘났다고 글을 쓰고 공유하고 그러냐 겸손하지 못하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겁니다. 겸손은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많이 알고 있지만 언제든 나의 지식은 틀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줄 알고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줄 아는 것 그게 겸손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은 오히려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도 지식의 공유를 통해 더 정확한 지식을 얻거나 더 나은 지식을 창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썼던 글 중 Logstash의 Kafka Input 성능 개선 이야기 에서는 댓글을 통해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댓글을 통해 다시 한 번 학습하게 된 기회

만약 제가 이 글을 블로그에 작성하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maxpollsize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Logstash를 운영하고 있었을 겁니다. 제가 관련된 글을 썼고, 마침 좋은 분이 글을 읽어 주셨고 자신의 의견을 달아 주셨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게 바로 블로그 글의 선순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선순환이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도 다가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제 글에 있는 partition_assignment_strategy와 auto_commit_interval_ms 그리고 댓글에 있는 maxpollsize 이 세 가지 설정의 특징과 영향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블로그 글을 통해 누군가가 이슈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이를 통해 확보하게 된 시간을 바탕으로 좀 더 나은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경험을 또 글로 써주지 않으실까 기대해 봅니다. 이게 기술 공유의 선순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글을 쓰는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이런 선순환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 합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땅의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함이라고.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게 된 후로 저에게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로 출판이었죠.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 한 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어지간한 내공을 쌓은 엔지니어들은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거짓말처럼 저에게 그런 기회가 왔죠. 아직도 첫 책을 받아 든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너무 행복했고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책이 처음 집으로 온 날

새로운 기회는 사실 부수적인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히 글을 쓰다 보면 마법처럼 찾아오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 처음부터 책을 써야지 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찾아오게 되는 그런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그게 무엇이 되었든 시작하는 건 어렵습니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운 거라고.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처음 한 번이 정말 어렵습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글을 쓰고 나면 욕을 먹진 않을지.. 6년째 글을 써오고 있는 저도 항상 글을 쓸 때마다 어렵고 걱정됩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어떤 글이 될지, 뭐 이런 글을 썼어라고 욕을 먹거나 그렇진 않을지. 하지만 얼마 전 당근 마켓 SRE 밋업 2회 때 게더 타운에서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써 주신 블로그 글 정말 잘 보고 있어요. 같은 이슈를 겪고 있었는데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 맛에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것이겠죠.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차례입니다. 그게 어떤 것이 되어도 좋으니 당신의 글을 한 번 써보세요. 그리고 세상에 당신을 알려 보세요. 

반응형